제 목 : 물(水)을 닮자 | 조회수 : 1161 |
작성자 : 김종훈 | 작성일 : 2019-04-04 |
4월의 볕이 너무 따사로워, 점심을 먹고 궐동성전 앞을 흐르는 오산천을 따라 걷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보며 떠오른 몇 묵상을 나눈다.
첫째, 저 많은 물도 시작은 미약했으리라. 그도 그럴 것이 오산천의 시작은 용인시 구성면 동백리 향린동산 350고지 작은 샘에서이다. 그것이 신갈천 등의 여러 지류를 만나면서 오산천이 되었고, 이곳 오산을 지나 진위천과 안성천을 만나면 더 큰 하천이 되어 아산만으로 흘러간다. 둘째, 물은 멈추지 않는다. 막히면 돌아가긴 해도 쉬어가는 법은 없다. 셋째, 물은 아래로만 흐른다. 위로 흐르는 물은 없다. 넷째, 물은 내려가면서 세력을 키운다. 도랑물은 내려가면서 개울물이 되고, 개울물은 더 내려가 시냇물 되고, 시냇물은 또 더 내려가 큰 강물 된다. 결국 완전히 내려가 만든 것이 바다인 것이다. 다섯째, 물은 장애를 만나면 힘을 축적한다. 물을 둑으로 막으면 흐름은 중단되지만, 내적으로는 힘을 키워 그 둑이 터지는 순간 몇 백 배의 힘을 보여준다. 여섯째, 물은 스스로 남을 살린다. 물이 지나는 곳은 꽃이 피고 나무가 살며 생명이 숨 쉬고, 문화가 만들어지고, 도시가 형성된다. 일곱째, 물은 다 받아들인다. 맑든지 더럽든지 가리지 않고 늘 청탁포용(淸濁包容)한다. 여덟째, 물은 모든 것을 씻는다. 빨래도 씻고 몸도 씻고 공기와 땅의 더러움도 다 씻어낸다. 아홉째, 물은 넘치면 버리고 모자라면 기다린다. 절대 자기 그릇 이상의 것은 모으지 않는다. 또 모자라면 채워질 때까지 묵묵히 기다린다. 열째, 물은 늘 변화하지만 바뀌지는 않는다. 비와 구름과 얼음으로 때와 장소에 따라 모양은 바뀐다. 작은 그릇 큰 그릇, 담는 그릇에 따라 크기도 바뀐다. 하지만 물의 본질 H2O는 늘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떨까? 물을 얼마나 닮았을까? 그렇지 못하다. 사람은 초라한 자기 인생의 시작부터 용납할 마음이 없다. 지금의 못난 자신을 오로지 집안 탓, 배경 탓, 출신 탓으로만 돌린다.
또 사람은 금방 포기한다. 쉽게 좌절하고 쉽게 멈춘다. 장애물을 만나면 얼른 치워 버려야 할 것으로만 간주할 뿐, 힘을 축적하는 기회로는 활용하지 못한다. 장애물이 축복일 수도 있음은 모른다.
또 내려가는 것보다 위로만 올라가려 한다. 더 높아지지 못해 안달이다. 아마도 이는 높아지는 것만이 힘을 키우는 거라 믿기 때문일 터. 고로 물과는 정반대의 생각이다.
또 사람은 남을 살리기보다 자기만 살면 그만이라고 믿는다. 씻어주기보다 외려 더럽히며, 사람도 가려서 받아들이려 하고, 자기와 맞지 않으면 바로 배척한다. 넘치는데도 더 가지려하고, 모자라는 것은 채우지 못해 안달이다.
게다가 사람은 환경과 지위가 달라지면 본질까지도 변질된다. 돈 좀 모았다 싶으면, 좀 출세했다 싶으면 사람의 됨됨이마저 바꿔놓는다. 더 이상 과거의 순수함은 온데간데없다.
아, 사람이 물만도 못하다니 참으로 안타깝다. 그러니 다시 물에게서 배우자. 내 인생에 거창한 시작이 없었음을 원망 말고, 흘러가면서 키워가는 미래 희망을 긍정하며, 내려가면서 더 풍성해지는 겸양을 배우고, 장애는 돌파하며, 세상을 정화시켜 생명을 공급하는 사람. 누구든 포용하고, 나눔과 기다림의 미학을 가진 사람. 때와 장소에 따른 변화무쌍은 허용하되 영원한 가치에 대해서는 불변한 사람. 이 사람이야말로 이 시대에 하나님이 찾으시고 세상이 찾는 참 사람이 아닐까?
그러니 우리 모두 물을 닮자. 물처럼 사신 예수님을 닮자. 나에게 영생을 주시고, 오늘도 내 목마름 해갈해주시는 예수님을 닮자. 이 또한 사순절에 다짐해볼만한 의미있는 묵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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